캐나다 동부 퀘벡주의 주도(州都).
원어명 Quebec
위치 캐나다 동부 퀘벡주
인구 16만 7264명(1996)
세인트로렌스강 어귀에 내만(內灣)이 갑자기 좁아진 지점에 발달한 항구도시이다. 지명은 인디언어로 해협(海峽) 또는 갑자기 좁아진 지점을 뜻한 것에서 유래되며, 인디언 시대에는 스태더코나라고 불렀다.
이곳을 최초로 찾아든 백인은 1535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였으나, 1608년 샹플랭이 처음으로 취락을 창설했다. 그 후 이곳은 프랑스와 영국 간에 여러 번 쟁탈이 계속되었다가 1736년의 파리조약 이래 정식으로 영국령(領)이 되었고, 1841∼67년까지 캐나다 식민지의 주도가 되었다.
시가는 상·하 2구로 나누며 상구(上區)는 해발고도 100m의 대지(臺地)에 있는데, 북아메리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성벽도시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관공서 등의 공공시설이 많으며, 공원·주택지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대지 변두리에서 세인트로렌스강을 바라보는 지점에는 유명한 프론트넉성(城)이 솟아 있어 한층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낸다. 하구(下區)는 주로 항구와 상업지구를 이루고 있으나, 교회를 비롯한 건물과 일상생활 풍습 등, 옛 프랑스 양식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퀘벡에는 프랑스계의 주민이 많으며, 언어도 프랑스어가 상용어로 쓰이고 있다. 신문용지의 제조를 비롯하여 금속·조선·펄프·피혁·식품가공·섬유 등의 공업이 성하며, 곡물·석유의 거래도 활발하다. 그러나 공업·무역면에서는 새로 발전한 몬트리올을 따르지 못한다.
시에는 1823년 이래의 성채를 비롯하여 17세기 이래의 건축물이 많아 캐나다 최대의 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 1852년에 설립된 캐나다 최고(最古)의 라발대학교는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문화의 발달에 크게 기여해 왔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원어명 Quebec
위치 캐나다 동부 퀘벡주
인구 16만 7264명(1996)
세인트로렌스강 어귀에 내만(內灣)이 갑자기 좁아진 지점에 발달한 항구도시이다. 지명은 인디언어로 해협(海峽) 또는 갑자기 좁아진 지점을 뜻한 것에서 유래되며, 인디언 시대에는 스태더코나라고 불렀다.
이곳을 최초로 찾아든 백인은 1535년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였으나, 1608년 샹플랭이 처음으로 취락을 창설했다. 그 후 이곳은 프랑스와 영국 간에 여러 번 쟁탈이 계속되었다가 1736년의 파리조약 이래 정식으로 영국령(領)이 되었고, 1841∼67년까지 캐나다 식민지의 주도가 되었다.
시가는 상·하 2구로 나누며 상구(上區)는 해발고도 100m의 대지(臺地)에 있는데, 북아메리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성벽도시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는 관공서 등의 공공시설이 많으며, 공원·주택지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대지 변두리에서 세인트로렌스강을 바라보는 지점에는 유명한 프론트넉성(城)이 솟아 있어 한층 아름다운 풍치를 자아낸다. 하구(下區)는 주로 항구와 상업지구를 이루고 있으나, 교회를 비롯한 건물과 일상생활 풍습 등, 옛 프랑스 양식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퀘벡에는 프랑스계의 주민이 많으며, 언어도 프랑스어가 상용어로 쓰이고 있다. 신문용지의 제조를 비롯하여 금속·조선·펄프·피혁·식품가공·섬유 등의 공업이 성하며, 곡물·석유의 거래도 활발하다. 그러나 공업·무역면에서는 새로 발전한 몬트리올을 따르지 못한다.
시에는 1823년 이래의 성채를 비롯하여 17세기 이래의 건축물이 많아 캐나다 최대의 역사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또 1852년에 설립된 캐나다 최고(最古)의 라발대학교는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 문화의 발달에 크게 기여해 왔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